하루키, 너바나, 그리고 중경삼림

별별 이야기 2007. 6. 11. 23: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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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뉴시스 기사 사진


610 항쟁이 벌써 20년이 되었단다. 신문마다 특집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현재를 비교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난 87년에 뭘하고 있었더라? ... 고3이었다. 인3이나 산3으로도 해결 안된다는 인생의 암흑기... 더구나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재수생 시절까지 더했으니 80년대란 내게 그리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386의 끝세대 (69년생에 89학번)이면서도 스스로는 90년대가 청춘기였다고 생각하곤 한다.

68세대에겐 전시대에서 건너온 고다르와 트뤼포가 있었고, <관객모독>의 페터 한트케가 있었다. 물론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과 비틀즈도 있었음은 부연이 필요없다. 그렇다면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우리세대에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가 아닐까?

최근 한 문학 평론가가 2000년대 대한민국 문학계의 위기를 진단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대충 이런 요지의 평을 남겼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깊이는 없고, 단문의 리듬이 만들어낸 싸구려 댄스에 열광한다'
90년대에 나 역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기에,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 다시 읽을만큼 좋아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하루키가 그렇게 싸구려였나? 아니면 그 책을 좋아했던 우리가 한심한 세대였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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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나의 90년대 대학생활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던 시기였다. 학생회에서 간부생활을 하던 운동권이었으며 강남의 전설적 나이트 클럽 월팝에 출석부 찍던 날라리였고,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한 후유증으로 대학의 담장을 월담해 어디론가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던 주변인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 하루키의 소설을 만났다. 후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은 <상실의 시대>라는 국내명으로 출간된 것이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사실 곡의 원뜻은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이다... 아무튼) 도입부에 등장하는,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는 우물의 은유. 말 없는 소년이 수다쟁이로 변신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청춘이 되었다는 슬픈 독백. 사랑하는 사람과 겪는 소통의 부재와 죽음.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만 했던 혼란. 나의 90년대에도 그 모든 것이 있었기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강철군화> 옆자리엔 <상실의 시대>가 꼽혀 있어야만 했었다. 나이 쉰이 될때까지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선배 한 명이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표류한 톰 행크스의 표정 하나까지도 다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든 책이든 혹은 전화기 너머 그녀의 투정이든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엔 절묘하게 '쪽쪽' 흡수되는 것이니, 90년대의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그랬던 셈이다.

Nevermind

군대를 다녀왔지만 여전한 뒤죽박죽 속에서 끙끙거리던 93년, 막내가 LP로 구입해 놓았던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Come as you are>의 비장한 분위기, <Polly>의 건조한 기타 사운드, 그리고 <Smells like teen spirit>의 분노의 질주가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을 만끽했었다. 얼마나 반복해 들었는지 턴테이블의 카트리지 바늘에 긁힌 LP는 앞면과 뒷면이 뚤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닐 영의 음악을 들으며 자살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이런 어설픈 비명소리를 내야만 했다. '젠장, 내 청춘도 이제 끝장났군' (지금 생각해 보면 같잖은 똥폼이다)
자다가 일어난듯한 부시시한 머리, 빨래줄에서 막 걷어 입은 듯한 구김많은 셔츠, 계단에도 앉고, 길에서도 자고, 그래서 결국 빵구 난 듯한 청바지, 그리고 폼잡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와 보컬... 너바나는 그 명료한 단순성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 엉덩이에 강렬한 똥침을 날렸던 것이다. 이런 대사와 함께 '이봐 친구 인생 뭐 있어? 그냥 헤드뱅잉하라구~!'

중경삼림

5년간의 대학생활에도 결국 졸업장이라는 증빙서류 한 장을 얻는데 실패한 채 터덜터덜 학교를 제발로 걸어 나왔을 때, 왕가위를 만났다. 물론 그 이전 이미 <몽콕하문-열혈남아>와 <아비정전>으로 첫 인사는 나누었었지만, '음 괜찮은 감독이군' 정도의 감상이었으니 아직 '열렬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시기 상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처음 본 그의 영화 <중경삼림>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몸의 수분을 땀으로 빼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금성무의 재기발랄한 독백도 그럴듯 했지만, 역시 후반부 양조위와 왕비(당시에는 왕정문이라고 불리웠다)가 등장한 에피소드는 웃으면서 눈물이 났던, 그래서 거시기에 털 날 것 같던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역시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는 전작 <아비정전>처럼 '97년 홍콩반환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제도권을 나타내는 경찰 양조위는 매번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스튜어디스 여자친구를 부러워한다. <California dream>을 틀어 놓은 왕비의 정서 역시 낙원(이라고 상상하는) 캘리포니아를 동경하며 현재의 그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 역시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을 떠나간다. 물론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양조위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녀가 다시 떠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90년대의 나 역시 지치고 우울한 날들엔 가열찬 투쟁정신을 망각한 채 무조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으니, 비록 사회에 나와 본 영화라곤 할지라도 영화속 인물들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사회에서도 희망은 인사불성 상태이고, 낙관은 그로기였으니 굳이 옛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의 중경삼림이 있었기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마치 '쟤들 봐, 나보다 더하잖아!'라든가, 아니면 '그래그래 나 같은 인간들이 또 있군' 정도의 위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위로만으로도 다시 벌떡 일어설 만큼 정력 세던 시절이니(아, 그 정력 그립다!). 물론 어디론가 떠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음도 고백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크랜베리스의 <Dreams>를 리메이크한 왕비의 <몽중인>이나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곡은 디나 와싱턴의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이다. 섹스를 끝낸 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 양조위가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장면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불안한 미래의 홍콩을 떠나고 싶은 양조위의 마음이 모형 비행기로 묘사되었던 씬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음악만 들으면 나 역시 이기동 선생의 말처럼 '어디론가 맬리맬리 떠나고 싶어지니...'

68년도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87년도는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90년대 역시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칼 포퍼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하더라도 느낀 것과 기억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한 문학 평론가의 혹평도 '그러려니'라는 나의 평소 인생관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문득 서글퍼지는 것이 2000년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와 블로그(이 글을 블로그에 적고 있음에도...) 등에 별다른 감흥이나 추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나 역시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는 조악한 그래픽과 호전적인 야만의 결합이며 블로그란 서투른 일기장의 다름아니다'라는 망언을 뱉어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청춘의 한 때 겪어야 독약처럼 강렬한 맛에 비로소 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P.S.
1.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글쓰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또 잊어버렸다. 아~ 이토록 가난한 기억력이라니...
2.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가 어쩌고, 블로그가 어쩌고 하는 글을 쓰게 되더라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앞서 자백했듯 빈곤한 기억력이 언제 또 도져 망발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니...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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