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복수극, 나훈아 쇼

음악 이야기 2008. 1. 29. 10: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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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케이블 TV를 통해 생방송된 나훈아의 기자회견은 '완벽한 시나리오의 쇼'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한 편의 위대한 걸작(!)이었다. 룸싸롱 괴담과 증권가의 루머를 인터넷에 퍼나른 네티즌의 기획력. 그 기획을 확대, 재생산이라는 형식으로 홍보해낸 언론. 그리고 신들린 듯한 연기로 기자회견장을 장악한 나훈아의 열연. 일찌기 헐리웃의 어떤 블록버스터도 보여주지 못한 장관의 볼거리였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은 나훈아의 일갈에 기가 죽은 듯 침묵하거나 그의 한판승을 겸허히 인정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인터넷에 음모론을 스스럼 없이 유포하던 네티즌은 기적을 본 신도들처럼 나훈아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건 무엇인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야기는 돌아돌아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해프닝이라고 봐야 하지만, 그간 투입된 제작비와 동원 스텝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웃기지도 않는 대작 코미디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이 코미디의 중심엔 나훈아가 있다.

악의 가득한 네티즌에게서 시작된 음모론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는 동안 나훈아는 침묵했다. 해명할 것이 없으니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그의 기자회견 내용은 일견 옳은 듯 하지만 옳지 않다. 그것은 그가 연예인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음에서 시작된다.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40년의 시간동안 가수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그 동일한 시간만큼 미디어를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쇼를 홍보하고 앨범과 보도자료를 미디어에 뿌리고, 인터뷰를 통해 팬들을 만나온 가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양날의 칼과 같은 미디어를 활용과 이용의 가치로만 받아들였을 뿐, 그 관리에는 소홀했던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수많은 괴담과 루머가 난무하는 동안 그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자신만 정직하면 그만이라는 말은 불행히도 연예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연예인도 자연인이다. 사생활에 대한 보호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최초의 잘못이 미디어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확대, 재생산의 결과에 나훈아 자신의 방관이 결탁해 있음은 무시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하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택한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훈아의 설교엔 귀담아 들을 부분이 분명히 있다. '기자들이 한 발만 더 뛰었어도 일개 루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속도전에 뛰어든 인터넷 기사들은 사실 확인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직 페이지 뷰 숫자만이 진실일 뿐이다. 신속, 정확의 요소 중에서 신속은 무한대로 나아가고 있지만 정확이란 부분은 그에 반비례해 한없이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 인터넷 특종이라는 신조류에 휩쓸린 21세기의 미디어들은 기사를 꾸민 루머의 진원지가 어디였는지 명확하게 찾기 힘든 장점을 십분 이용한다. 맞는 기사라면 자신들이 최초라 주장하고 엉뚱한 내용으로 판명났을 경우엔 찌질한 네티즌 탓으로 그 화살을 돌린다. 한심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우린 이미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이런 미디어 상황과 나훈아의 방심(!)이 이루어낸 운명의 쇼가 바로 기자회견이었다. 11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나훈아는 선방을 날렸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 이 선언적 발언은 이후 진행될 기자회견을 '나훈아 쇼'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인간적인 호감과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개인소사를 중심으로 했던 초반부. 미디어의 책임론을 주장하며 전세를 이끌어가는 중반부. 그리고 테이블 퍼포먼스를 통한 대망의 하이라이트의 연출과 두 여배우의 고통과 그 치유를 부르짖는 아름다운 엔딩까지.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나훈아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통해 구현되었다. 전쟁에 승리한 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히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미디어와 대중은 최면에 빠져 버렸다. '아,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카리스마의 아름다움이구나!'라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결과만 말하자면, 그 동안 인터넷을 떠돌았던 괴담과 루머 그 어느 것도 명확히 해명 된 것이 없다. 그저 나훈아의 어록만이 남았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그의 입을 빌리자면 '한 일이 없으니 해명할 것이 없다'라는 바로 이 부분이 나훈아 기자회견을 하나의 쇼로 만들고 만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기 위해선 질문과 대답이라는 검증을 거쳐야만 한다. 몇 몇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면 기자회견을 통해 그 간의 행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질문이 있어야 했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졌어야 조각난 이야기의 나머지를 완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음모론의 시작이 개념 상실의 어떤 네티즌에게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증폭의 과정에서 미디어가 제기했던 궁금증과 의혹엔 객관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준비된 해명과 미디어에 대한 그의 비난만이 난무했고, 사실에 대한 확인은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회견은 감독, 주연을 맡은 나훈아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고 와야 했던 일방의 '쇼'가 되어버린 셈이다.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기자회견을 자신의 리사이틀 쇼로 만들어버린 나훈아의 탁월한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다. 말 그대로 연예계 일반을 꿰뚫어 보고 있는 그의 뛰어난 혜안과 40년의 연륜이 가져온 미디어 플레이의 성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한 판의 해프닝 아닌 해프닝엔 더욱 큰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이 이렇게 커져버리기 전 사전에 방지 하려는 의지가 조금만 있었다면 해외토픽을 통해 전세계로 이 코미디가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좀 더 친절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면 여전한 이 찜찜함도 해소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훈아는 자신을 음해(했다고 여겨지는)한 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복수극을 펼쳐 보이고 싶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네티즌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나훈아의 입지가 강화되고 덕분에 미디어들도 용비어천가를 닮은 기사를 실어 나르기 바쁘지만, 냉정히 사건을 분석해온 몇 몇 기자들의 머릿속엔 풀리지 않은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우린 동어반복같은 코미디 한 편을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감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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