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극장가는 그야말로 난형난제의 흥행 국면이 펼쳐질 전망이다. 연휴를 앞둔 1월 31일 한국영화만 무려 4편이 맞붙는다. 신하균과 변희봉, 신구 배우의 앙상블을 선보이게 될 스릴러 <더 게임>과 일제시대를 배경 삼은 두 편의 영화, <라듸오 데이즈>와 <원스 어폰 어 타임>, 그리고 황정민과 전지현을 앞세운 휴먼 드라마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그것이다. 여기에 한 주 늦게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 <6년째 연애중>과 또 한 편의 휴먼드라마 <마지막 선물>까지 가세하게 되면, 무려 6편의 한국영화가 설 연휴 극장가를 놓고 '박 터지는' 흥행 대결을 펼치게 되는 셈이다.(이렇게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다니지 말고 분산해 개봉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대목을 노리는 영화사들의 심정이야 이심전심일 터이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도 이해는 간다. 여하튼 이들 영화 가운데 한 두 편 빼고는 다 망하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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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화 가운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도 이상한 노릇은 아니다. 황정민과 전지현이 만났다니 그 연기 조합이 어떨까 호기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말아톤>과 <좋지 아니한가>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니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서도 살짝 신뢰감이 돋는다. 최근 내가 만난 영화인들도 하나 같이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영화계 안팎에서 올 설 연휴 최대의 흥행 변수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나는 영화에 대해 어땠냐고 묻는 분들에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진심은 알겠어요. 진정성도 있고 미덕이 있는 영화라는 것도 인정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가...심심해요."

말 그대로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내용적으로 괜찮을 뿐만 아니라 정윤철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영화다. 감독이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주장하는 한 '정신 이상자'의 선행을 빌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발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매우 유의미하다는 것까지 알겠다. 이기적인 환경 파괴와 극단적인 개인주의, 그리고 도덕 불감증의 살풍경이 슈퍼맨의 어깨를 짓누른다. 슈퍼맨은 이들 괴물과 맞써 싸운다. 이 엉뚱한 정신 이상자는 결국 우리가 잊고 지냈던 선한 마음과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다. 웃다가 부끄러워지는 것, 그것이 슈퍼맨이, 그리고 감독이 관객에게 의도한 감정의 흐름이라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제법 뚝심 있게 그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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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결정적으로 그 뚝심이 관객이 허용할 수 있는 감정의 경계를 살짝 넘어섰다 돌아온 느낌이다. 내게 그것은 계몽에 대한 어떤 강박처럼 보였다. 진심이 완곡하게 돌아 관객의 폐부를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하나의 상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진심을 곧장 언어화함으로써 오히려 관객의 능동성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슈퍼맨의 입을 빌린 감독의 발언이라는 게 분명해 보이는, 이를테면 "돕지 않으면 도우려는 마음도 사라지잖아요." "현재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도 바뀌지 않습니다."와 같은, 자못 '좋은 생각'스러운 대사들이 대표적이다. 세상 바라보는 답답한 마음 알겠는데, 그 마음을 해석하고 주체적으로 내면화할 관객의 힘을 끝까지 신뢰하지 않는다면, 자칫 잔소리로만 들릴 수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설교나 강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심심하다. 자칭 '슈퍼맨'(황정민)의 과거사가 밝혀지는 순간까지, 슈퍼맨의 이어지는 엽기적 선행과,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송수정 피디(전지현)가 슈퍼맨의 진심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장황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영화의 진정성을 강조하려다 생긴 '과유불급'의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꽤 괜찮은 영화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았을 뻔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황정민이 선보이는 또 한번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감독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내겐 범작의 수준의 머물고 말았다. 곱씹을만한 얘기를 들려주는 이 영화에서 곱씹을만한 잔상을 얻지 못한 나는, 다만 이 영화와 함께 했던 두 시간 동안의 '착한 시간'을 스스로 대견해 했을 뿐이다.
 

까칠한 휴먼 다큐 피디로 변신한 전지현에겐 자꾸 CF 속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의 한 유명 배우는 시대극 출연을 앞두고 스스로 광고 출연을 6개월 간 중단했다고 한다. 그가 맡을 영화 속 캐릭터를 관객들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배려였던 셈이다. 어젯밤 TV에서 란제리 바람으로 요염한 둔부를 흔들어대던 그 뽀얀 얼굴이 슈퍼맨과, 그를 짓누르는 이 지랄 같은 세상을 진심으로 연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참으로 감정이입 안되는 건 나만의 경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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