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만 있고, 명품은 없다

음악 이야기 2007. 11. 15. 00:1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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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없고, 상품만 넘쳐나고 있다. 현재 최고의 스타라고 불리우는 여성그룹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의 라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음정은 불안정하고 가창력은 가창력이라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다. 생방송에서 삑사리를 낸 장면들은 UCC로 인터넷을 순항중이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스타이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자. 그녀들은 단순한 상품인가? 아니면 명품인가?

현재 가요계 최고의 슈퍼스타급 아티스트인 이효리나 아이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넘쳐나는 CF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로 이미지를 유지, 보수, 재생산하며 슈퍼스타라는 최상급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무대에서 그녀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글쎄'라는 애매한 평가를 이끌어 낼 뿐이다. 노래하는 싱어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노래 '잘하는' 싱어인가라는 문제제기에 다다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슈퍼스타라고 불리우지만, 명품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긴 왠지 석연치가 않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을 듣고 한 평론가는 이런 평을 남겼다.
"그녀는 가수가 작곡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2007년 대한민국의 소위 가요계 스타라 불리우는 싱어 누구에게도 이런 평을 부여하긴 쉽지 않다. 잘 다듬어진 헤어와 의상, 화려한 무대가 그녀들의 백그라운드로 든든한 뒷받침을 하고 있지만, 싱어의 기본이라고 하는 가창력이란 부분에 이르면 역시 '글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서 작곡가가 던져준 샘플링 가득한 웰-메이드의 히트곡 멜로디를 빼낸다면 순수한 의미의 가창력으로써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무엇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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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금)과 10일(토) 잠실 올림픽 공원내 체조 경기장에선 비욘세의 내한 콘서트가 있었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두시간 가까운 라이브를 소화한 그녀의 공연은 상품과 명품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관객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살인적인 훈련량을 보여주듯 격렬한 댄스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음정, 그리고 댄스와 발라드 곡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탁월한 곡 해석까지 단순한 싱어가 아닌 아티스트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모범 답안이었다. 아울러 무엇이 명품인가에 대한 결정적 단서이기도 했다.

너무 단적인 사례를 통한 팝 음악계와 가요계의 비교일까? 미국의 노래 굉장히 잘하는 가수 한 명을 통한 가요계의 일방적인 매도인 것일까?

명품이라 부를 수 있는 슈퍼스타를 생산하기 위해선 시스템이 확립되어야만 한다. 길거리 캐스팅이 일반화된 국내 가요계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을 거쳐야지만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앨범을 낼 수 있는 팝 음악계의 시스템 차이가 '명품을 생산할 수 있느냐'라는 가능성을 논하게 한다.  

1960년대 미국에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영국인 여권만 있다면 미국에선 누구라도 앨범을 낼 수 있다.' 영국 그룹 비틀즈의 선풍적인 인기가 미국을 휩쓸면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지금의 가요계에 응용해 보면 이렇다. '노래를 전혀 못한다 해도 메이저 프로덕션과 계약만하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원더걸스의 음악 <Tell Me>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라고 해봐야 결국은 90년대 팝 스타 스테이시 큐의 <Two of Hearts>의 샘플링에 불과한 것이고, 그녀들이 무명이었던 데뷔초부터 TV의 각종 쇼프로그램에 출연 할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 기획사의 파워에 기인함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이런 스타 만들기의 일반적인 방식들은 소녀시대나 이전 이효리, 아이비의 성공신화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행을 재빨리 캐치하고 그에 걸맞는 상품들을 순식간에 생산해내는 기획사 시스템의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물론 팝 음악계에도 이런 스타 메이킹 시스템은 존재한다. 그러나 명품급의 가수들은 이런 시스템만으론 생성되지 않는다.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한 대부분의 가수들은 속칭 갸라지 밴드라고 불리우는 아마추어 밴드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차고에서 연습을 하고, 실력이 붙으면 지역의 클럽으로 진출한다. 그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지방 방송국에 출연하고 거기서도 호평을 받으면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맺은 뒤 중앙 무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계별로 나누어진 이런 서바이벌 시스템은 최소한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한 가수라면 음악성이나 가창력에서 기본기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명품급이라 불리우는 가수가 되기 위해선 몇 년에 걸쳐 검증되고 훈련된 무엇이 있어야만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요계 스타들의 조로 현상을 이야기하고, 히트 곡이 없는 스타라는 비아냥도 가요계에선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도 그 해결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방송은 유지되고, 기획사는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중이 가요계의 명품을 만날 기회란 점점 줄어 들고 있다. 며칠 전 방송국에서 만난 한 연예 기획사의 부장은 이런 말을 했다. "노래 잘하는 애들 필요없어요. 노래방 수준의 가창력만 있어도 기획만 잘하면 스타로 만들 수 있다구요."

명품도 결국 자본주의 시장내에서 상품의 일종일 뿐이다. 그래도 같은 값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선 최상의 품질을 뜻하는 명품을 얻기 바란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할 시스템은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찌보면 샘플링이란 미명아래 눈가리고 아웅식의 표절이 난무하고, 방송사보다 연예 프로덕션의 힘이 더 커진 현실에서 영원히 오지 못할 이상인지도 모른다.  

상품으로 존재하던 가수가 명품 수준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선 필연적인 트레이닝 데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기획사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최근 술자리를 함께한 또 다른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자신들의 딜레머를 털어 놓았다. "아이들을 훈련시킬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죠. 일단 지명도를 얻고 좀 떳다 싶으면 그 때부터 행사, 밤무대 등으로 돌리기 바뻐요. 기획사에는 뜬 아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훈련생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당장의 현금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어차피 그럴려고 기획한 애들이니까... 훈련을 더 시킨다고 노래를 아주 잘 할 정도로 재능이 있는 아이들도 아니거든요. 사실 살인적인 스케쥴을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구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범했던 가수를 스타와 슈퍼스타로 만들어주는 대중들의 호응에 있을 것이다. 꽤 오래전 외국에서 보았던 한 가수의 공연 무대는 이것에 대한 반증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빌보드 차트 상위에 랭크되며 높은 인기를 얻던 가수였다. 그러나 연습 부족으로 공연은 엉망이 되어버렸고, 그들의 무대엔 화난 관객들의 물병들이 날아 들었다. 스타를 따르는 팬들이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입장권을 산 자신들의 정성만큼 충분한 연습이라는 노력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음악과 그 음악을 전달하는 가수에게 일정한 기대치를 설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대중들이다. 그 대중들의 선택이 스타와 슈퍼스타를 넘어선 명품의 호칭을 허락하게 한다.    

음악은 취향이 존재하는 문화다. 그러니 자신들의 취향에 따른 호응을 보여주는 것에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스타가 넘쳐나는 미국의 팝 음악계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리우는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적어도 싱어라는 그들의 최초 출발점에서 한 번 더 나아가 훌륭한, 혹은 뛰어난 등의 수식어를 충분히 붙일 수 있는 실력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검증하는 대중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가요계의 넘쳐나는 스타들에게 따라 붙는 가창력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을 넘어서 만성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타와 슈퍼스타라는 호칭을 버젓이 달고 그것을 허락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의 상품일 뿐, 결코 명품은 되지 못한다. 화려한 외형 뒤에 꼼꼼한 박음질과 마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스타들은 넘쳐나지만, 명품은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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