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에서 지방대학에 다니는 K군.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야간에는 시급 3,000원짜리 편의점 알바로 학비를 보태는 처지다. 그런 K군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영화보기. 사실, K군이 영화보기를 취미로 가진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다. 고교시절, 단돈 500원으로 즐길 수 있는 '비디오'의 매력이 그를 '영화의 길'로 이끌었다.
K군은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을 서울 종로에 있는 필름포럼이라는 극장에서 봤다. 매니아 답게 흰수건을 목에 두르고 극장에 들어서던 순간의 짜릿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K군. 하지만, 그날 K군의 지갑에서 빠져나간 돈은 모두 67,400원. 2,000원짜리 라면과 김밥으로 두 끼를 해결하고도 교통비로만 4시간짜리 편의점 알바 6일치 임금을 고스란히 날려야 했다. 어디 돈 뿐인가? K군이 집을 나선건 오전 9시. 왕복 9시간의 장거리 여행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 영화 한 편를 위해 꼬박 하루를 바쳤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 보기'를 포기할 수 없는 K군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감흥'을 포기하고, 영화를 기다리는 설레임을 몇 달간만 참으면 DVD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K군은 이것 역시 그리 믿을 만한 방법이 못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다. 단관 개봉하는 영화들은 DVD 대여점에 거의 깔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수익이 우선인 대여점은 잘 나갈 블럭버스터 영화는 서너개씩 비치하는 반면, 단관 개봉하는 '좋은 영화'에는 관심이 없으니, 결국은 7시간 알바비 20,000원을 투자해서 직접 구입하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확실한 방법이 아니다.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친구가 봤다던 영화 '내곁에 있어줘'.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얼음장같이 차가운 감성으로 유명한 친구를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는 지 궁금했다. 게다가, '무언의 힘'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영화 잡지의 리뷰는 K군이 영화 '내곁에 있어줘'의 DVD출시를 손꼽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러나, 아직도 K군은 '내곁에 있어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된 지 2년이 넘었건만, DVD 출시 소식은 아직도 요원하다. 하긴, 배급권을 가진 'CJ엔터테인먼트'가 돈 안되는 영화의 DVD를 출시할리가 없지.
친구들에게 이같은 고민들 털어 놓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다운 받으면 되잖아?'. 하지만, 심성 고운 K군은 '다운로드'가 불법이며, 남의 재산을 훔치는 도둑질이란 사실을 철썩같이 믿는 고지식한 인간이었다. 가끔 편의점에서 좀도둑이 가져간 껌 몇통과 과자 몇봉지 값을, 얼마 안되는 알바비로 보충하면서 가슴 아파했던 K군은 '불법 다운로드' 역시 누군가의 가슴을 찢어 놓는 도둑질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영화 아닌가? K군은 비록, 짝사랑일지언정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운로드'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거리낌없이 '다운'받고 '다운' 받은 영화가 마음에 안들면, 인터넷을 떠돌며 '쓰레기'라 욕한다. 도둑이 간밤에 훔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음날 아침, 주인을 찾아가 욕설을 퍼붓는 거랑 뭐가 다르지? 이런 생각을 하는 K군을 친구들은 '바보'라고 놀린다.
* 주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며, 글쓴이가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창조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 주2 :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보니, '영화=상품=돈'으로 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군요. 그런 시각에서 보면, 관객에게 '좋은 영화를 볼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돈'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의 권리는 더욱 명확해 집니다.
바로, 여러분이 영화보실 때 마다 내는 7,000원중 3%(204원)가 영화발전기금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영화발전기금은 대중성없는 영화의 창작과 배급, 영화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금입니다. 이 돈이 모여 한 달에 30억원, 1년이면 360억원이랍니다. 단순하게 따져봐도, 이 가운데 지방 사람들이 모아준 돈은 1년에 200억원쯤 됩니다.
자, 이 정도면, '돈'의 관점으로 봐도, 지방 사람들이 '좋은 영화를 볼 권리'를 주장할 만 하죠? '작은 영화'에 대한 프린트 지원과 스크린 지원에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정말 , 수익성이 문제라면, 과거, 문예진흥기금이 연극이나 뮤지컬의 지방 공연을 후원했듯이, 영화 역시 같은 방식으로 후원해주길 바라는 거죠. 돈도 얼마 안드는데, 관심과 애정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일인데, 왜 안할까요? 도대체 영화발전기금은 어디다 쓰는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