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의 가을 라디오 개편을 바라보며...

음악 이야기 2007. 10. 28. 10: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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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라디오 키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0월 28일 현재, 방송 3사 중 KBS와 MBC 라디오의 가을 개편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시나이다. 아니 어쩌면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뒷 걸음 친 개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상징으로 지난 21년간 전문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전영혁 DJ가 마이크를 놓은 것을 꼽을 수 있다. 허위 학력 사태의 유탄을 맞고 전사한 셈이다. 유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기타 다른 연예인들이 비록 도덕적 지탄은 있었을 망정, 자신들의 전문직에 학력 위조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정상참작 받아 여전히 생존해 있음을 빗대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대중적 기반이나 메니지먼트사의 지원을 받지 못한 프리랜서 DJ만이 하차라는 수순으로 그 음악적 여정을 끝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나마 차별적인 음악의 공급을 담당했던 전초 기지 하나가 폐쇄되었으며 나머지 프로그램들이 이전 프로그램들의 명맥 잇기에서 머문 것을 감안하면 '다양한 음악=라디오'라는 공식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아침부터 낮과 밤을 지나 새벽까지 똑같은 가요 틀기를 DJ들의 얼굴만 바꾸어 시행하고 있는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들에 차별적 선곡과 군더더기 없는 진행 방식으로 애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전영혁의 퇴진은 라디오의 종말이라는 섬뜩한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똑같은 음악 프로그램들의 대극으로써, 전문 DJ라는 명칭을 수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DJ로서 전영혁의 입지는 확고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개편의 칼날은 이런 그가 지닌 음악계의 공적인 지위를 단숨에 박살 내 버렸다. 물론 그 빌미는 허위 학력이라는 그의 실수(!)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 청취율(전영혁의 프로그램이 청취율의 사각지대에 위치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확보를 위한 KBS의 결단(!)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팝 칼럼니스트로서 몇 몇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다보면 황당한(!) 의견과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전문적인 음악이나 선별적인 장르의 음악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에 이런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요새 촌스럽게 음악을 장르로 트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어요?" 전문적인 음악을 다루거나 음악을 장르로 분화하는 것이 그토록 촌스러운 행위일까? 팝 음악의 메카로 불리우는 영미의 라디오 들은 대부분 시간대를 정해 장르로 나뉜 음악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것은 음악이라는 대전제에 묶여 있긴 하지만, 팝과 재즈, 소울과 록, 대중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팬 층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호러 무비와 로맨틱 코메디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문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왜 라디오 관계자들은 장르별 프로그램들이 국내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

간단히 말해 광고를 위한 청취율 확보가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업방송인 SBS의 경우는 방송사의 태생상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준공익 방송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MBC는 비록 심야 시간대의 편성이긴 하지만, <이주연의 영화 음악실>과 <뮤직 스트리트 3부 황우창의 월드뮤직>, 그리고 프라임 타임에서 20년 가까이 롱런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통해 최소한의 자기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공익방송을 지향하는 KBS의 경우는 다수라는 논리로 방송사가 지녀야할 계몽과 교양의 임무를 포기하고 있다. 만약 전영혁의 퇴진이 순수한 도덕적 문제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라면, 그가 맡았던 시간대에 다른 전문 DJ를 초빙하거나 프로그램의 성격만이라도 전문적인 음악 방송으로 남겨 두었어야 한다. 그러나 <All that chart>라는 이름으로 역시 똑같은 가요 음악만을 선곡하는 프로그램이 대체된 것은 청취율 확보를 위한 개편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증거인 셈이다.

매카시 열풍과 싸웠던 미국 CBS 보도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TV가 시청자들에 대한 계몽을 포기하는 순간 TV는 말 그대로 바보상자가 되어버린다.'

라디오의 FM이란 밴드는 음악 프로그램을 위해 특화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라디오의 FM은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코너들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차지한 채, 또한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초대손님들의 신변잡기와 수다로 채워지고 있다. 몇 번인가 이런 상황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방송사들의 항변은 역시 청취율이란 단어를 풀어서 말한 '대중들이 원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의 대사를 인용해보자면, 'FM 라디오가 청취자들에 대한 음악적 계몽을 포기한 순간 이미 자기 본래의 기능을 포기해 버린 셈이다.' 그저 방송사의 수익을 위한 광고 창구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MP3를 통한 음악듣기나 인터넷 방송, DMB 등이 등장하면서 라디오가 포기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창구는 확보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과외학원이 충분히 늘어났으니 학교 교육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에 불과하다. 라디오를 벗어난 기타의 방법들은 선택이나 여과의 활동일 뿐 라디오가 맡아야할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영어가사가 등장하는 팝 음악을 뭐하러 들어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까지는 팝 음악이 더 높은 수준의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 다니고,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옷을 사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다. 청취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교양 수준을 높이는 것이며 더 높은 단계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단을 밟아 가는 것이다. 같은 금액이라면 동대문의 옷을 사겠는가, 아니면 강남 백화점 명품관의 명품 옷을 사겠는가?

일종의 우민화 정책같은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폐해는 고스란히 청취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등장하는 가요들이 들려주는 낯뜨거운 표절의 현상들은 가요계가 스스로의 자정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팝 음악을 듣는 이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멜로디들이지만, 그 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소수로 전락해 버렸기에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 더구나 가요 팬들에게 일종의 질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전영혁 DJ의 프로그램 하차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몇 몇 생각 없는 광신도를 거느리고 있던 사이비 교주의 몰락.'

시대의 분위기를 재빨리 읽고 있는 미디어의 종사자들은 더 이상 가요계의 표절을 문화계 1면의 기사로 다루지 않는다. 아니 거의 거론하지도 않고 있다. 미디어 역시 독자 확보를 위한 전쟁중이니 다수 대중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관심 없어할 기사를 쓸 이유를 잃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가린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메랑처럼 날아온 표절의 무감각한 시류는 가요계 일반의 창작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 쯤되면 다음 세대에선 순수 창작의 가요를 기대하기 힘들 정도이기까지 하다.

언젠가부터 라디오의 청취율은 일정한 속도로 하강 라인을 그리고 있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꾸준히 줄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 관계자들은 그 원인을 인터넷과 기타 매체를 통한 음악 듣기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일견 옳으면서도 명백히 틀린 것이다. 라디오는 다른 매체가 갖지 못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TV가 갖지 못한 기능인 1:1 매체로서 '나만의 친구'라는 단어와 가장 부합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공허한 TV 프로그램들의 시청이 가지지 못한 친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기타 매체처럼 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저 전원 버튼을 누르고 주파수만 맞추면 2시간 동안 DJ가 틀어주는 자동 선곡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능들이 장점으로 부각되기 위해선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일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청취율이란 미명아래 교복처럼 똑같은 취향과 목소리만 큰 다수를 선호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언제까지 앨범은 사지도 않은 채, 그래서 음악에는 관심 없이 오직 아이돌 스타들을 보기 위해 방송국 앞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연호하는 10대들만을 타켓으로 삼을 것인가?

들으려고 해도 들을 만한 음악이 없는 라디오의 미래는 암울하다. 단순히 듣는 것이라는 특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라디오의 고유한 성격 때문에 그 영향력은 다른 매체들에 비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약해져만 갈 것이다. 그렇기에 라디오의 프로그램들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미래 역시 밝지 않을 것이다. 판이 커지지 않는다면 나누어 먹을 피자의 양도 줄어들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라디오의 위기에 아무도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Back to basic을 실행해야 할 때는 아닐까? 다양한 음악이 백화점처럼 진열되고, 사람들의 수다가 아닌 음악 본래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서의 라디오말이다. 비록 잠시나마 프로그램 각각의 청취율은 줄겠지만, 분명 장기적으론 라디오 전체의 청취율은 올라갈 것이다. 지금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에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함이란 소수의 매니아가 아닌 말 뜻 그대로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민은 그 곳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라디오 키드들이 늘어난 곳에 라디오의 미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 개편은 그저 또 한 번의 개편이었을 뿐이라고 여기고 싶다. 적어도 라디오 키드로서 라디오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팝 칼럼니스트의 맹목적인 신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라디오를 움직이고 있는 PD, 작가, DJ들 역시 팝 칼럼니스트와 같은 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하나의 희망으로 삼고 심다. 그들에게도 라디오의 부활이라는 똑같은 꿈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P.S.
지난 21년간 수많은 고비가 있었음에도 라디오 키드들을 훌륭히 키워내준 전영혁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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