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영화 이야기 2018. 7. 2. 08:25 Posted by cinemAgora

<마녀>의 박훈정 감독은 2010년 즈음 꽤나 촉망 받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가 모두 그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흥행과 작품성에서 반응이 엇갈렸지만, 박훈정은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첫 연출작 <혈투>는 배급사조차 홍보를 포기할 정도로 망작이 되어 버렸다.

여기까지의 필모그래피만 보더라도 박훈정의 영화적 취향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악마성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동시에 선과 악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은 철학이 깃든 통찰이라기 보다 장르적 필요에 의해 불려 나온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담배 꼬나물고 내뱉는 욕설과 폼을 잡는 대사도 그렇거니와,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어지는 호흡은 너무나 전형적이라 그만큼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이라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이어질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건 흔히 영화광적 영화 감독들이 갖는 편향성이기도 하다. 장점이되 단점이기도 하다. 철학의 부재는 이야기의 부재로 이어진다. 하여 그의 영화에는 자극적이고 선혈이 낭자한 장면의 강렬함은 있되, 이야기의 밀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좋은 이야기는 골방에서 익힌 트릭이 아니라 넓은 세상에서 길어올린 깊은 생각에서 우러 나온다.

사실상 <신세계>가 그의 유일한 흥행작인데, 이 작품은 솔까말 홍콩 영화 <무간도>의 짝퉁이다. 흥행이 된 것은 그나마 황정민의 캐릭터 플레이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작품들, 그러니까 <대호>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어리둥절한 영화였고, <브이아이피> 역시 접보물과 형사 액션물이 어리둥절하게 짬뽕된 영화였다. 두 작품 모두 흥행 실패했다.

이번 영화 <마녀>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컨셉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선혈이 낭자하고, 액션에 이야기를 억지로 동원한 것 역시 전작들과 비슷하다. 이런 자극성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상호텍스트성은 장르 영화의 중요한 줄기이기 때문에, 여러 장르의 영향을 잔뜩 받아 구겨 넣은 것은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플러스 알파다. 박훈정의 영화에는 그게 빠져 있다. <신세계>에서는 캐스팅 운이 좋아 황정민이 그 알파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감독이란 직업은 운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녀>는 박훈정의 운이 다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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