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루시

영화 이야기 2018. 6. 26. 12:37 Posted by cinemAgora

외롭습니까? 사랑하고 싶으세요? 어쩌죠? 주변에 사랑할만한 사람이 없다고요? 딱하군요. 발에 차이는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오! 루시>의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도 그런 여자입니다. 직장에서는 왕따, 가족들은 나몰라라, 외로움에 사무쳐 지내는 40대 노처녀, 그나마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조카가 어느날 미국에 가게 되었다며 자신이 다니던 영어 학원에 대신 다니라고 말합니다. 이모에게 남은 학원비를 챙겨 여비를 마련할 심산이었죠.

그래서 찾아간 영어 학원, 준수한 원어민 영어 강사 존(조쉬 하트넷)은 세츠코를 보자마자 대뜸 포옹부터 합니다. 그게 친밀감의 미국식 표현이라는군요. 그리고 세츠코에게 '루시'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 줍니다. 금빛 가발까지 씌워주니 세츠코, 아니 루시는 뭔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존재감 제로에 수십년 전 애인을 친언니에게 빼앗긴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이 한심한 여인의 삶에 극적인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오! 루시>는 외로움과 사랑의 함수 관계에 대한 영화입니다. 외로움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조작할 수 있겠지요. 감정이야 조작하든 말든 상관 없지만, 그게 관계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부조리가 발생하기 일쑤입니다. 자기 감정을 돌보느라 타인을 사랑이라는 명분에 동원하는 건 착취입니다. 따라서 조심해야 합니다. 외로움이라는 괴물에 먹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말이죠.

테라지마 시노부는 2005년 <바이브레이터>라는 영화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영화로는 참 오랜만에 보게 됩니다. 가부키 명망가의 딸인데, <바이브레이터>에서 수위가 꽤 높은 섹스신을 선보여 집안의 망신을 샀던 용감한 배우입니다. 야쿠쇼 코지도 조연으로 나옵니다. 아무리 잘 나가도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건 일본 배우들의 미덕입니다.

이번주 팟캐스트 '불금쇼' 녹음 때 이 영화를 소개했는데, 진행자 최욱 씨가 아주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더군요. "일본 영화는 너무 슴슴해요." 슴슴함의 매력을 모르는 이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6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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