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어게인

영화 이야기 2018. 4. 19. 16:14 Posted by cinemAgora

좌절은 영화 속 주인공의 필연적 숙명이다. 그러나 극복 역시 숙명이다. 이 두 요소는 99% 이상의 영화가 채택하는 이야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색다르게 변주하느냐가 영화적 성패를 가른다.


<리브 어게인>(4월 26일 개봉)은 그걸 부녀 뮤지션의 이야기를 통해 변주한다. 여주인공 주드(앰버 허드)는 목하 좌절 중인 30대 초반의 막 나가는 펑크록 뮤지션이다. CM송을 부르며 근근히 먹고 살다 집세도 내지 못해 쫓겨난 그녀는 별 수 없이 죽도록 싫은 아버지 폴(크리스토퍼 월큰)의 집을 찾아간다. 한때 ‘로맨스의 황제’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퇴물이 되어 버린 아버지는 결혼과 이혼을 숱하게 되풀이한, 딸보다 더 막나갔던 뮤지션이다. 그런데 성격은 딸과 정반대. 만사 천하태평에 듣든 말든 "왕년에 내가" 타령. 이미 잊혀진 스타가 되어버린 처지를 애써 무시하며 언감생심 컴백을 노린다. 만사가 안풀려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딸이 그런 아버지와 코드가 맞을 리 없다. 게다가 한동안 얹혀 지낼 수밖에 없게 됐으니 다음 이야기는 굳이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렇다. 티격태격 좌충우돌의 나날들.


주드의 록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폴의 컴백이 철들지 못한 노인의 아집이라고 몰아세우는 딸. 아버지는 지나치게 낙천적이라 문제이고 딸은 너무 비관적이라 문제다. 어쨌든 유일한 공통점은 객관적으로 둘 다 좌절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음악을 하는 부녀는 둘다 세상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있다. 아버지는 퇴물이 되었고, 딸은 음악계의 변두리를 맴돌고 있다. 영화는 여기서 은근한 끈을 엮는다. 서로를 조롱하고 무시하지만, 어쩌면 두 사람은 어서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동지적 관계인 것이다.


영화의 제목 <리브 어게인>은 영화 속 폴의 자작곡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다시 살 수 있다면...” 이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만약 당신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지나온 날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됐지? 누가 내 삶을 이렇게 망쳐 놓았지? 누구 탓이지? 회한으로 가득 차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뻔하긴 해도 정신 건강에는 좋은 팁을 넌지시 던진다.


“다시 살 수야 없지. 한 번 더 해봐. 지금, 바로 지금 말이야.”


이 영화의 원제는 “One More Time”이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