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영화 이야기 2017. 7. 31. 17:57 Posted by cinemAgora

일제 강점기가 한국 근현대사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깊다. 또한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식민지 상황을, 식민지를 통과한 조선 민중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절실하고도 필요한 작업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틀어진 초상이 대부분 그 역사적/비극적 시공간을 발원지로 삼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를 어떻게 상상해 왔는가. 불행하게도 <암살> 이전의 한국영화들이 소환했던 식민지 상황은 표피적인 추상성과 두루둥술한 피해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동훈의 <암살>(2015)은 가상적인 활극으로나마 영화를 역사적 피해 의식으로부터 탈출시켰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미완의 숙제를 무의식적으로 껴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 이제 그 시대를 다시 바라보자”라고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던 것이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안옥윤(전지현 분)의 슬프고도 당찬 대사는 그 역설적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염석진(이정재 분)은 해방 직후 설립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앞에서 낯 두껍게 발언함으로써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정체를 자백한다. “해방될 줄 알았나?”

자, 이제 한국영화는, 한국의 생각 있는 영화쟁이들은 바야흐로 그 시대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숙하게 들어갈 차례였다. 허구적으로 상상되는 식민지의 가상 인물과 가상 현실이 아니라, 구체성을 확보한 가운데 식민지적 시공간의 정체를 더욱 입체적으로 껴안고 추체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자임한 이는, 뜻밖에도 숱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던 이준익 감독이었다.

이준익은 영화 <사도>를 통해 실존 인물이자 역사적 개인을 소환해, 시대성에 구속된 이들의 비극을 재연하는 데 성공했다. 이 탁월한 시대극을 마치자마자, 이준익은 곧바로 5억 원의 저예산으로 <동주>를 연출했다. 역시 실존 인물 윤동주 시인을 재조명한 것이다. 우리가 단지 ‘시어’로만 상상한 식민지 청년의 슬프고도 무기력한 감수성은, 의도적으로 흑백 화면을 채택한 이준익의 영상 미학을 통해 웅장하고도 숭고하게 재해석된다.

내가 ‘웅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비극이 비극으로서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전달되는 미학적 경지를 <동주>가 성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비극의 진경은 다분히 윤동주라는 정의롭되 문약한 인물과, 그의 사촌이자 피가 끓는 행동파 청년 송몽규의 다른 방향성이 같은 비극적 최후를 향해 있기에 증폭된다.

그렇다. 시대에 구속된다는 것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 <동주>는 그럼으로써 단순한 평전의 차원을 넘어 보편 언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어쩔 도리 없이 시대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우리의 삶이, 비극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영화 <박열>을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과감하게 식민지 청년의 심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이준익은, <동주>의 성공에 힘입어 역시 실존 인물을 담은 <박열>을 통해 또 한번 비극의 진경에 다가서려는 욕망을 서슴없이 실천에 옮긴다.

영화의 줄거리를 구구절절 읊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단지 이렇게 얘기하자. 영화 <박열>은 두 명의 역사적 개인을 두 개의 축으로 재해석한다. 저항과 사랑.

1920년대의 일본 도쿄에서 살아가는 무정부주의자 박열(이제훈 분), 역시 무정부주의자로서 일본의 천황제를 경멸했던,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 <동주>의 윤동주와 송몽규가 전한 정서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무기력한 분노’였다면, <박열>의 두 인물이 전하는 정서는 일본제국주의라는 역사적 추물과 영화적 안타고니스트에 대한 ‘조롱’과 ‘경멸’이다. 두 인물이 제국주의 통치 국가인 일본 출신 여성과, ‘구타’라는 소박한 방식 또한 저항의 도구로 삼았던 식민지 조선 출신 청년이라는 국적 구별은, 이 영화에서 효력을 상실한다.

두 사람은 관동 대지진의 여파로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을 가리기 위해 기소된 ‘기회’를 틈타, 제국주의의 본질인 일본의 천황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또 다른 측면에서의 웅장한 ‘기개’를 드러낸다. ‘불령사’라는 조직원이었던 두 사람이 구속된 이후 일본 판사 앞에서 심문을 받는 장면과, 재판을 받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따로 심문을 받는 두 사람이 교차되는 대목에서, 이준익은 슬쩍 두 사람의 로맨스를 뒤섞는다. 단 한 번의 키스신도, 단 한 번의 정사신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의 동지애와 사랑은 숭고한 동시에 더없이 에로틱하다.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다른 설정도 아니고, 판사의 심문을 당하는 상황에서 그 절절한 사랑이 자동 웅변되고 있으니 말이다.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저항 정신과 굴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박열>이 추구하는 두 개의 정서적 축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결합을 정교한 내러티브와 솜씨 좋은 편집, 폭발력 있는 연기의 화학 작용으로 상상해 낸다. 그 상상은 힘이 넘친다. 너무 슬퍼서 힘이 넘치고, 너무 여운이 길어 힘이 넘친다. 구체의 힘은, 구체적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성찰하는 진정성은 이토록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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