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리뷰

영화 이야기 2016. 5. 15. 21:14 Posted by cinemAgora

*스포일러 가득하니 영화를 본 분들만 읽으시기 바람



영화 <곡성>의 관객수가 오늘 2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야 개봉했던 수요일까지 포함해 닷새만의 스코어다. 역대 5월 개봉 한국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토요일이었던 어제 하루에만 76만 명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 몰렸다. 대부분의 이른바 기대작들이 개봉 초반 1,500개 이상의 스크린 독식을 통해 최대치의 오프닝 스코어를 확보한 것에 비하면 이 영화의 개봉 스크린수 1,122개는 차라리 소박해 보인다.(물론 관객들이 몰리면서 토요일에는 1,467개로 늘었다.) 그렇게 본다면, <곡성>은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만년 조연이었던 곽도원이 주연으로 나선데다, 블록버스터라는 수식과는 어울리지 않은 호러 장르에 가까운 <곡성>이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푸념, "무서운 것을 넘어 불쾌하다"는 혹평이 있는가 하면,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다"는 유보적 호평과 "몰입감 하나는 죽인다"는 영화적 짜임새에 대한 극찬도 있다.


어쨌든 최근 한국영화 가운데 <곡성>만큼 관람객들의 영화평이 SNS를 달구고 있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영화가 관객들 사이에서 여러 해석의 갈랫길을 만들고 있다는 건데, 나는 그것 자체가 이 영화의 흥행적 흡입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번쯤 풀어 보고 싶은 퍼즐을 관객들에게 던진 것이고, 관객들은 나홍진이 던진 미끼를 덮썩 물고는 "이게 도대체 뭐지?" 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합리적 인과관계의 틀로 해석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이야기가 자꾸 꼬이게 된다. 한마디로 영화 <곡성>은 앞뒤가 맞지 않는 퍼즐이다. 그러니까 [일가족 살인사건-->종구(곽도원) 딸의 귀신 들림 현상-->천우희의 힌트--> 황정민의 살굿-->수상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을 향한 종구의 적개심-->황정민의 기만-->천우희의 제어-->귀신 들림의 원인에 대한 불안한 확신-->일본인이 악마임이 드러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는 인과 관계를 방해하는 나홍진의 트릭 때문에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일본인이 악마였다면 왜 그는 종구 일행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가. 황정민이 일본인의 동지였다면 왜 그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일본인을 겨냥한 살굿을 펼치는가. 이런 것들이 영화 용어로는 맥거핀(관객들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다른 쪽으로 돌리는 속임수)인데, <곡성>은 따지고 보면 영화 전체가 맥거핀인 셈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악마(또는 귀신)가 있어서 공포가 생긴 것인가? 아니면 공포가 악마를 만든 것인가? 나는 후자가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종구의 불신이 공포를 낳았고, 공포가 악마를 만드는 과정이 <곡성>의 내러티브인 셈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왜냐면 영화 자체가 나홍진(혹은 종구, 혹은 우리)이 꾸는 악몽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사회가 꾸는 악몽이기도 하다. 꿈은 합리적 인과 관계의 사슬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다. 그 자체로 덩어리이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다. 다만 악몽을 꾸고 난 뒤의 얼떨떨함만이 남을 뿐이다. 현실과 꿈의 경계. 그 곳에 <곡성>이 있다.


나홍진은 <추격자>와 <황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지옥도를 그렸다. 두 작품에서 그가 채택한 스릴러라는 장르는 인과 관계가 중요했다. 그러나 그가 그 지옥도를 악몽으로 풀기로 작심한 순간, 그는 오컬트와 좀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짐짓 스릴러인 척 미끼를 던져 놓고는 관객을 인간의 근원적 심연, 그러니까 비합리성이 판치는,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가닥을 잡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물론 그곳 역시 지옥이다. 편리한대로 믿고 편리한대로 증오하는 그곳. 미끼에 걸려 육지로 올라와 파닥대는 관객들은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하고 의아해할 뿐이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는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악마 또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공포의 화신' 인간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악마(나홍진 또는 관객)는 바보 같은 인간(나홍진 또는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현현하는 것이다. 악마는 공포가 욕망하는 바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신과 악마는 공포의 이음동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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