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보릿고개 더 심해졌다

영화 이야기 2016.05.05 06:48 Posted by cinemAgora

보릿고개라는 말 들어보셨죠. 먹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 특히 봄에 먹을 게 부족해 보리로 연명하면서 춘궁기를 넘었다 해서 보릿고개인데요. 그런데 이 보릿고개가 한국영화에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봄에 이렇다할만한 흥행작이 나오지 않는 현상인데요. 올해는 보릿고개가 훨씬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4월 한달동안 흥행한 영화, 어떤 작품이 기억나시나요?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으시다구요? 순위상으로는 곽재용 감독의 <시간이탈자>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거머쥐면서 선전한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말 그대로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흥행 1위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관객을 많이 모았다고 볼 수 없지요. 실제로 영화 <시간이탈자>는 개봉한 4월 13일부터 줄곧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지만, 100만 명을 살짝 웃도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제작비 60억 원이 들어간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50만 명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그렇다면 반타작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의 성적은 더욱 참혹합니다. 함께 개봉한 <해어화>의 경우엔 5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관객 동원 기록을 냈는데요. 제가 ‘무비부비’에서 그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건만 왠일인지 관객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아무튼 4월 개봉작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강예원과 이상윤이 주연한 스릴러 영화 <날 보러와요>가 거의 유일한데요. 그나마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던 건 워낙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관객수는 95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시야를 조금 넓혀서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몇 편이나 될지 따져보았습니다.


설연휴 극장가를 사실상 독식하다시피한 황정민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이 970만 명, 거의 천만 명에 육박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죠.


그 뒤를 잇는 흥행작은 의외의 히트를 기록한 <귀향>이라는 작품입니다. 메이저 배급사의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여서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358만 명이라는 의미 있는 흥행을 기록했죠.

자, <검사외전>과 <귀향>, 이렇게 딱 두 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올해 개봉작 가운데 200만 명 이상을 돌파한 영화는 단 두 편뿐입니다. 나머지 영화들은 죄다 잘 되 봤자 100만 명 안팎이거나 그 이하의 저조한 흥행 성적을 냈죠.


아이돌 출신 배우 임시완이 주연한 휴먼 드라마 <오빠 생각>이 106만 명, 유아인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출동한 로맨스 영화 <좋아해줘>가 84만 명, 유연석과 문채원이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그날의 분위기>가 65만 명, 심은경 주연의 스릴러 영화 <널 기다리며>가 63만 명, 이성민 주연의 SF 휴먼 드라마 <로봇 소리>가 47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야말로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이 쪽박을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만, 5억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116만 명을 동원한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작지만 알찬 흥행을 한 예외에 속합니다.


자, 어쨌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많은 관객들이 요즘 극장가에 볼만한 영화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게요, 대부분의 메이저 배급사들이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소위 ‘미는’ 작품들을 성수기인 여름이나 겨울 시즌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비수기에는 비교적 중저예산 영화들을 내놓는데, 문제는 그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비수기엔 더욱 극장에 안가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까 나름 괜찮은 완성도를 갖췄어도 흥행이 잘 안되는 않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는 거죠. 성수기인 여름이나 겨울 시즌에 천만 영화가 나오지만, 봄 가을에는 쪽박 영화가 양산되는 시즌별 양극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보니까요. 올해 1/4분기 극장을 찾은 관객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0만 명 정도 줄어 들었습니다. 앞서 설명해드린대로, 한국영화의 봄 가뭄, 혹은 보릿 고개는 다분히 자초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뭔가 한방이 있는 영화, 관객들은 그런 영화에는 흔쾌히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를테면 <귀향>이나 <동주>같은 작품들처럼 말이죠. 그런데, 두 영화 모두 메이저 배급사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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