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춘할망

영화 이야기 2016. 5. 5. 06:42 Posted by cinemAgora

지난 월요일 영화 <계춘할망>을 보고 많이 울었다. 이렇게 울리는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내가 얻은 감상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유보한다. 왜냐면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이 감동의 소산인지, 즉 감정의 정화 작용을 통해 내 자아가 순화되는 결과로 이어진 건지, 아니면 자극에 반응한 파블로프의 개가 흘린 조건반사적 분비물인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한국 가족 휴먼 드라마는 후자에 속한다. 관객들에게 감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일회용 눈물 서비스인 것이다.


어쨌든 이틀이 지난 뒤 톺아보건대, <계춘할망>도 눈물 서비스의 범주에서 예외는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영화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모성의 보편성 위에 치매에 걸려 돌아가신 내 어머니에 대한 구체적 회고가 얹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계춘할망>은 영화가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난 순간, 그러니까 해녀 할망(윤여정)이 서울의 재래시장에서 손녀딸을 잃어버린 그 순간부터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보나마나 할망과 손녀딸간의 이별-->재회-->재이별-->재재회의 내러티브로 갈 것이다. 영화는 이런 나의 예측을 친절하게 확인시켜주며 전개된다.


문제는, 이 드라마의 상투성을 더 상투적이게 만드는, '계기들'이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네 가지 전환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기를 얼렁뚱땅 제시하고 넘어간다. 마치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냥 헤어지고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상황 속에서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듯.


뮤직비디오와 CF로 단련된 창 감독의 연출력은 제주도의 풍광과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장면에서만 빛난다. 대신 이야기를 지배하는 능력의 부재를 드러낸다. 그나마 이 뻔한 가족 신파를 구원하는 건 윤여정의 위대한(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연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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