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의 영화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는 스릴러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솜씨 좋게 주무르는 가운데서도 묵직한 주제 의식을 녹여 넣는다. 그의 영화는 한편으로 기괴하며 한편으로 얼얼하다. 그가 영화를 통해 들여다 보는 세상은 지옥이다. 그래서 강렬하다. <추격자>가 그랬고,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황해>가 그랬다.
이번 영화 <곡성>도 마찬가지다. 기괴한 일가족 살인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는 이 영화의 시공간도 또 다른 차원에서의 지옥이다. 단지 앞선 두 편이 구조적 부조리가 펼쳐내는, 구체성을 확보한 지옥도였다면, 이 영화 <곡성>에선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는 인간 사회의 집단 심리, 더 근본적인 심연 속의 지옥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래서 그가 채택한 소재적 방법론은 '귀신 들림' 이고, 그걸 풀어가는 장르적 방법론은 호러, 하위적으로는 엑소시즘과 좀비 영화다. 그는 호기롭게도 성경의 한 구절을 악마의 대사로 둔갑시켜 놓는 신성모독을 저지른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나홍진이 그려 놓은 지옥의 상상계가 인간의 공포, 불신을 전제한 믿음이 창조하는 상상계의 영화적 투영이라는 걸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솜씨만큼은 나홍진의 탁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나는 한번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