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의 경지에 이른 먹방

TV 이야기 2016. 2. 15. 12:08 Posted by cinemAgora




케이블이 포맷을 만들면 공중파가 베끼는 게 요즘 세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케이블이 에로를 찍으면 공중파는 포르노를 찍는다.


먹방은 스테디 셀러다. 오래 팔려 그런게 아니라 기본 시청률을 담보하기 때문이다.(포유류 생명체인 인간의 기본 욕구, 그러니까 식욕, 성욕, 배설욕, 수면욕 중에 식욕은 유일하게 방송에 허락된 영역이다.) 그래서 맛집 탐방은 공중파의 오랜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이걸 케이블에서는 '셰프들의 세계', 그러니까 전문가의 영역으로 변용했고, 시청자들은 단순히 맛있는 걸 구경하는 걸 넘어 만드는 과정까지 눈으로만 호강할 수 있었다.


공중파는 즉각 대응, 아니 확대재생산적으로 카피했다. 대표적인 게 '백종원의 3대 천왕'이라는 제목의 SBS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체의 특성상 불가능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그걸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백종원과 출연자들의 입을 아주 크게 보여준다.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이 수용자의 정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라는 면에서, 그러니까 이 입이라는 기관의 경우는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야한 영화의 섹스신과 성교하는 부위를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하는 포르노만큼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보통 말하는 데 쓰는 입이 클로즈업되면, 그건 추한 언어를 내뱉고 있음을 상징한다. 뭔가를 먹을 때의 입이 의도적으로 클로즈업되면, 그건 관습적으로 탐욕스러움을 상징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움'이라는 부정적 메시지를 거세할 수 있는 게 공중파라는 안전장치다. 음식을 찾아가는 여정과, 음식에 대한 패널들의 과도한 리액션과 이런저런 논평들은 그걸 더욱 안전하게 치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백종원의 입은 포르노그래피의 성기와 다름 없다. 시청자들은 그가 어떤 맛을 느끼는지 도저히 모르며, 단지 그 크게 벌린 입과 우적우적 씹는 모양을 통해 별미의 음식물이 투입되는 쾌락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포르노가 사람들에게 주는 건 즉각적인 자극이다. 본질적으로 그건, 목격만 하되 성취할 수 없는 유사 쾌락을 위해 동원되는 자극이다. 우리는 공중파가 포르노를 보여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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