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영화 이야기 2015. 7. 21. 19:34 Posted by cinemAgora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은 철거 농성장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담아내고 있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두 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된다. 한 명은 현장에 아버지를 보러 왔던 10대 소년, 또 한명은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의경이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경찰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 분)는 검찰에 기소된다. 검찰은 박재호의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건 경찰이 아니라 철거 용역이므로 박재호가 엉뚱한 경찰을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국선 변호를 맡게 된 지원(윤계상 분)은, 그러나 박재호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의 아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지원은 자신의 선배 변호사인 대석(유해진 분)을 사건에 끌어 들이는 한편,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본격 소송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 여기자 한 명이 이들의 소송 과정에 깊이 개입하는데, 그녀는 바로 강제 진압 현장에 있었던 사회부 기자 수경(김옥빈)이다. 영화 속에서 수경은 당차고 정의로운 기자로 묘사된다. 그동안 대개의 한국영화 속에 비쳐진 언론의 모습이 다분히 권력에 기생하는 악어새나 특종을 위해 배신을 서슴지 않는 박쥐와도 같은 존재로 그려졌다면, 수경은 한국영화에서 모처럼 만나는 기자 다운 기자다. 그녀는 공권력을 앞세워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검찰 앞에서 주눅 늘고 힘겨워 하는 진원을 끊임 없이 응원한다. 그리고 여론을 진원 팀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기사를 쓴다. 수경 덕분에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법조계의 아웃사이더에 머물던 변호사 진원은 일약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게 된다. 국가를 상대로 한 이 소송에서 그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국가 시스템에 대항하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이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과연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몰입하게 만든다.


진원과 대석 팀은 소송의 와중에 검찰이 증거를 은폐하는 걸 넘어 조작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진원은 망설인다. 이걸 지금 공개하는 것이 과연 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그들과 함께 증거를 확인한 수경은 눈을 반짝인다. 엄청난 특종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당장 기사를 쓰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진원이 막아 선다. “당신은 고작 이걸 기사화하기 위해 우리랑 여기까지 왔던 거야? 지금 그 까짓 기사 몇 줄이 그렇게 중요해?” 진원은 만약 이것이 기사화됐을 경우, 검찰이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방해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욱 꼬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테면 언론의 딜레마라는 건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지금 터뜨리면 엄청난 대특종이 될 터, 다른 언론들은 그걸 받아 쓰느라고 바쁠 것이고 기사화한 주인공은 일약 특종 기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소송의 목적이 최종적인 승리라면, 그러니까 피고인 박재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더 나아가 소송의 피고인 국가, 즉 대한민국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라면, 기사화를 조금 늦추는 것도 전략적으로 맞다는 진원의 판단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수경은 매몰차게 진원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 기자야!”
이 말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 자신은 특종 앞에서 망설일 수 없는 직업적 본능의 소유자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고, 확인된 사실 앞에서, 그것도 국가 권력의 엄청난 부도덕을 목도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언론의 윤리가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변호사의 전략과 언론의 윤리가 충돌하는 순간이다. 더 큰 진실을 위한 행보에서 어느 선택이 더 맞는 것인지는,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실제 언론인들이 숱한 보도 현장 속에서 겪게 되는 딜레마를 영화 <소수의견>은 매우 설득력 있게 펼쳐 보여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불명확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사실을 잠깐 유보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진실의 향방과 관련 없이 확인된 사실을 즉각 보도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수경의 딜레마가 비단 영화 속의 상황으로만 머무는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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