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신뢰감을 안겨주는 두 영화사의 로고가 있다. 하나는 헤드라이트 불빛 두 개가 겹쳐져 있는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로고이고, 하나는 영국의 BBC FILM이다. 오늘 이 두 로고가 한꺼번에 나오는 영화를 봤다. 7월 9일 국내 개봉한 <우먼 인 골드>이다. 와인스타인과 BBC의 합작이라니! 시작부터 기대감에 부풀게 만든다. 과연, 영화가 묵직하다.
영화 제목 '우먼 인 골드'는 20세기의 위대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다른 이름이다. 이 그림은 원래 클림트가 아델레라는 여인을 위해 그려주고 선물한 것인데, 나중에 나치가 이를 빼앗았고, 반세기가 넘도록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보관 전시돼 왔다.
영화는 그림 속 주인공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헬렌 미렌)가 나치에 의해 그림이 강제로 빼앗긴 과정을 문제 삼아 환수 소송을 해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유능한 신참 변호사이자 역시 오스트라아계 미국인인 랜드(라이언 레이놀즈)가 조력자로 나선다. 만만치 않은 소송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인류의 유산으로서 오스트리아에 남는 게 마땅할까, 아니면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온당할까. 두 가지 입장 모두 이해 영역 안에 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는 예술사적 걸작을 둘러싼 소송 과정을 통해 과거사를 대하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올바른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 탐색 과정에는 과거사는 그냥 과거로 묻고 넘어가야 할지,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할 것은 시효와 상관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꽤 묵직한 질문이 포함된다.
이것은 실화다. 제작진이 하필 이 사건에 주목한 것은 앞서 말한 과거사의 문제에 대한 유의미한 화두를 붙잡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여전히 비틀려진 과거가 현재진행형의 왜곡을 강제하고 있는 이 땅의 영화인들에게는 책임이 막중하다. 서구에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와인스타인 컴퍼니와 BBC FILM 같은 영화사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토양 자체가 우리와 천양지차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접하고 나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사실상의 '관제' 영화를 만들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처지가 더욱 딱하고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