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영화 이야기 2015. 3. 10. 08:25 Posted by cinemAgora




마이클 키튼.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시리즈의 그 배트맨입니다. 배트맨을 패러디한 게 비교적 분명한 <버드맨>에서, 그는 한때 잘 나갔던 슈퍼 히어로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이자 지금은 대중들로부터 잊혀진 퇴물 배우로 나옵니다. 그런 그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를 통해 재기를 노리는 신경증적인 과정이 <버드맨>의 중심 스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실제 대중들의 뇌리 속에서 슬쩍 잊혀진 마이클 키튼이 바로 자신의 처지를 영화 속의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들어감에 따라 전성기를 갈무리한 배우들의 처절한 자의식이 캐릭터에 마구 베어 나오고, 그것이 이 영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마치 <레슬러>의 미키 루크를 볼 때의 그 아릿함을 연상시키되, 천재적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치기 어린 형식 실험으로 말미암아 시종일관 팽팽한 심리극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단 하나의 컷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트릭이지만, 어쨌든 카메라는 단 한번도 화면 전환을 하지 않고 인물과 공간 사이를 부유합니다.

어쨌든 이런 게 영화의 진경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영화는 연극 무대를 핑계 삼아, 값싼 구경거리가 된 할리우드 영화와 그 앞에 줄을 서는 멍청한 관객들을 실컷 조롱합니다. 어쩌면 나를 향해 있을 그 조롱은, 그러나 통쾌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멍청합니다. 실재와 허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우리로선 영화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치욕입니다. 이런 치욕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과 형식도 그렇습니다. 마이클 키튼은 자신의 현재를 모욕하는 버드맨 시절 분신과 끊임 없이 갈등합니다. 영화도 초현실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슬쩍 슬쩍 넘나들며 영화가 영악한 건지 관객이 우둔한 건지, 아니면 반대인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바로 그런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통해, 영화는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한 끗 차로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우스운 자화상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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