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삼바

영화 이야기 2015. 3. 10. 08:24 Posted by cinemAgora




프랑스 영화 <웰컴, 삼바>에서는 근래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짜릿한 롱테이크 도입부를 선보이고 있었다. 영화의 첫 신을 롱테이크로 설계하는 연출 방식은, 이를테면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이나 로버트 알트먼의 <플레이어> 같은 작품에서 기가 막히게 보여준 바 있는데, 이 영화도 그에 못지 않은 롱테이크의 미학을 과시한다.

카메라는 어느 화려한 파티장을 비추면서 출발한다. 1920년대 의상을 입은 이들이 스윙 댄스를 추고 있고, 행복에 겨운 이들이 풍요로운 파티를 즐기고 있다. 거대한 높이의 케이크를 춤을 추던 두 커플이 살짝 커팅하고 나면, 쫙 빼입은 급사 네 명이 그 케이크를 번쩍 들어 주방쪽으로 나른다. 카메라가 그들을 따라 가면 어느새 바깥의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파티장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른 주방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분주하게 각종 요리를 만들어내는 조리사들이 비쳐지고, 카메라는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요리의향연을 탐닉하는 척 하다가 슬쩍 귀퉁이를 돌아 더 들어간다. 이제부터 파티장에선 볼 수 없었던 이들이 나온다. 주로 흑인들. 그들은 흥청망청 파티장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접시들을 정신 없이 닦고 있다. 카메라는 이윽고 무표정한 상태에서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삼바(오마 사이)다.

공간을 부유하는 단 한 컷으로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인 프랑스의 축약도를 그려 보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처한 이 사회의 좌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가 막힌 롱테이크다. 요컨대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의 고되고 반복적인 노동이 뒤를 받치는 곳. 더 정확하게 말해 프랑스 주류의 백인들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흘러든 저임금 노동자들(국가는 그들을 불법 이민자라고 부른다.)의 희생이 강요되는 곳. 국가간 불평등이 강제한 '소외'의 풍경을, 그 롱테이크 한 컷으로 단박에 붙잡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게 영화의 쾌감이다. 카메라의 각도와 움직임을 주제 의식과 어떻게 결부시킬 것인가. 바로 그런 창작자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를 목격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고민의 결과를 만나고 나면, 희열과 여운이 동시에 밀려든다. 영화를 보며 얻게 되는 진짜 감동은, 예상된 자극에 예상된 반응을 하며 눈물 한방울 흘리는 게 아닌,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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