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국영화계에 '작가주의'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영화는 '작가(auteur)로서의 감독이 중심이 된 예술'이라는 선언적 테제는 프랑수아 트뤼포로 대표되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정신이었고, 이것은 누벨바그에 자극받은 일군의 평론가들에 의해 90년대 이후 한국에도 삽시간에 유행했다. 실제로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영화계는 작가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철수, 박광수, 장선우, 여균동, 임상수,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임순례 등 소위 '작가'로 분류되는 감독군이 모두 이 때 등장했고, 비록 흥행은 엇갈렸지만 대체로 이들 새로운 작가군은 평단의 환호를 받았다.
이 말을 꺼낸 것은 현재의 한국영화에 과연 작가가 존재하냐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국제시장>은 윤제균의 영화일까, CJ의 영화일까. <명량>은 김한민의 영화일까, CJ의 영화일까. 그런 영화에 작가주의 프레임을 들이대는 게 애시당초 번짓수를 잘못 찾은 일 것이다. 요컨대, 그런 영화에는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노림수와 거기에 동원되는, 감독 명찰을 단 테크니션들이 존재하지 시대에 대한 작가적 통찰을 기대할 수 없다.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작가들, 이를테면 홍상수나 김기덕, 이창동 등만이 힘겹게 자기 색깔을 지키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권에서 한참 멀어진 데다, 적어도 그들의 뒤를 이을 작가군이 10여년이 넘도록 등장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영화계에선 재빠르게 상업영화 진영으로 넘어가기를 바라는 신인들이 바늘 구멍을 통과하려고 애쓰는 낙타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한국영화는 단연코 작가의 시대가 아니다. 자본이 예술하는 시대다. 관객들은 작가가 아닌 자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