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의 효시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입니다. 흑백으로 찍힌 이 영화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약간은 조악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좀비 캐릭터가 원래 저예산 B급 영화의 단골 소재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 영역 안에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에는 '좀비'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고, 원제가 말하듯 살아 있는 시체, 즉 'Living Dead'를 공포의 매개로 삼았습니다. 최근의 좀비들이 바이러스의 유포가 그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데 반해, 이 영화에서는 인공위성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이 그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죠.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의 미국이 우주 탐험 열풍이 한창일 때라는 걸 감안한다면,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을 탐문하는 데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슬쩍 엿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시한 좀비 캐릭터는 어그적 어그적 걷고,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며, 그들의 인육을 먹는 것으로 설정돼 있죠. 좀비에 물리면 똑같이 좀비가 된다는 것도 이 영화가 만든 좀비의 원형적 특징입니다. 

한국영화 <좀비스쿨>(9월 25일 개봉)도 이런 좀비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습니다. <월드워Z> 등이 좀비를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차용했다면, B급 영화적인 감수성으로 중무장한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설정이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외딴 섬에 문제 학생들만을 수용한 고등학교가 배경이고, 이 학교의 교장과 선생들은 모두 폭력적이거나 치사합니다. 그런데, 교장이 먼저 맷돼지에게 물리고 좀비가 됩니다. 교사들이 차례 차례 좀비가 돼 학생들을 공격합니다.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좀비스쿨>이 교육 현장의 살풍경을 좀비 영화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교사들이 먼저 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교 자체가 거대한 좀비의 무덤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니, 이거 참, 직설적입니다. 

그런데 그 직설성이 이 영화의 흠인 것 같습니다. 상징성을 해석할 여지를 안겨주지 않고, 너무나 친절하게 '해설'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B급 영화적인 감수성을 귀엽게만 봐줄 수 없는 걸림돌을 스스로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촌스러운 저예산 영화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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