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주의

영화 이야기 2014. 9. 5. 22:00 Posted by cinemAgora

직업이 영화평론가라 그런지 나는 문화주의자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를 꿈꾼다. 정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화는 정치도 바꿀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라면, 그건 시민의 문화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또 믿는다. 기껏 영화 한편으로 존경하는 대통령이 달라질만큼, 문화적 체질이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역시 믿는다.

국민TV 라디오에서 나름 야심차게 진행했던 영화 프로그램이 8월로 막을 내렸다. 듣자하니 재정이 어려워 프로그램들을 줄였는데, 정치 시사 프로그램만 빼고 긴축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치 시사 프로그램 백날 들어봤자, 나라가 바뀌나? 평소의 신념을 확인하는 선택적 노출과 선택적 주목만을 강화할 뿐이다. 사고의 융통성보다 내편만이 옳다는 생각을 고착시킬 수 있다.

내 생각이 극단적인지 몰라도, 공동체가 진화하려면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고, 의식의 변화는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문화는 세상에 다종다양의 의견이 존재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새길만한 통찰을 건져 올리는 행위다.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세계관을 가다듬는 행위다. 그래서 문화는 인간이 밥을 해결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또다른 밥이었다. 굶어 죽을지언정 동굴에 벽화를 남긴 게 인간이다. 공자도 "시로써 일어나서 예로써 서며 음악으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論語 '泰伯')고 했다. '정치학'을 남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는 동시에 '시학(詩學)'을 남겼다.

나름 진보적인 매체조차 정치 시사 우선주의에 빠지는 모습은 씁쓸하다. 정말이지 그렇다. 문화가 결여된 진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켄 로치나 우디 앨런에 대해 토론할 수 없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으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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