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영화 이야기 2014. 9. 3. 12:32 Posted by cinemAgora




"저녁에 뭐 먹을래?"

"고기"
"돼지?"
"소!"

"일본은 아무래도 안되겠어..."
"일본이 안되는 게 아니라 네가 안돼!"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9월 11일 개봉)에서 부녀지간이 나누는 대화다. 다마코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취직할 생각은 안하고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얹혀 살며 빈둥댄다. 우리 식으로 '잉여'적 청춘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홀애비 신세가 된 아버지는 그런 딸이 한심하지만 나중엔 잔소리를 거두고 조용히 지켜만 본다. 다마코는 도대체 언제나 잉여 생활에서 벗어날 것인가. 

영화 내용에 대해 말할 것은 겨우 이 정도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의 얘기가 영화가 된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영화 말이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 드라마를 뽑아내는 것은 일본 영화의 전통 가운데 하나다. 일찍이 오즈 야스지로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그걸 잇고 있는 것 같다. 

충무로에는 이런 속설이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영화가 안된다.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면 영화가 된다." 영화적 소재는 뭔가 희한한 사건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일본 영화는 굳이 개가 사람을 물지 않아도 그냥 개와 사람이 서 있는 풍경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 마치 이웃집에서 툭 튀어 나온 것 같은 사람 그 자체가 영화가 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가슴팍 틈새로 슬그머니 삐져 나오는 감동까지 준다. 뭐랄까, 약간 슴슴한 소바를 후루룩 먹는 청량감? 이 영화와 주인공 다마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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