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오지랖과 느닷없는 분노

영화 이야기 2014. 9. 3. 12:31 Posted by cinemAgora
이번주 개봉하는 홍상수의 신작 <자유의 언덕>에서는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일본인 모리(카세 료)와 한국인 김의성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모리가 2년 전에 한국에 있는 어학원에서 일을 하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한국인들을 만나 일을 그만뒀다고 회고하자, 김의성은 "당신은 한국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겠어요?"라고 슬쩍 물어본다. 모리는 "일반화할 수 있겠어요? 제가 싫어하는 그들도 한국인이지만 제가 존경하는 이도 한국인이지요."라고 답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 윤여정은 모리에게 두 차례나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들은 예의바르고 조용하고 깨끗해요." 일반화다. 모리는 거기에 대해 별 소리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긍정적인 일반화의 범주에 속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그러나, 모든 일본인들이 예의바르고 조용하고 깨끗하다고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겠는가. 

김의성이 한국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모리는 이렇게 답한다. "한국여자들은...튼튼하고 크지요." 과연 모든 한국 여자들이 튼튼하고 큰가? 그것은 단지 모리의 단편적인 인상일 뿐이다. 한국인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말한 모리도 이렇게 쉽게 대상을 일반화해 버리는 데 흔쾌한 것이다.

어쨌든 영화가 보여주는 두 개의 일반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기실 현실 세계에서의 우리는 부정적인 일반화에 더 익숙한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전라도 사람들은 어떻다. 요즘 젊은이들은 매가리가 없다 등등. 어떤 경우엔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홍상수는 영화를 통해 일반화의 폭력이 일상화된 이곳에 만연한 또 하나의 폭력을 슬쩍 드러낸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오지랖의 무례다. 모리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에 왜 오셨어요? 사업차? 여행?" 모리는 이 똑같은 질문을 각기 다른 사람들로부터 네 차례 이상 받는다. 모리만큼이나 나중에는 관객도 짜증이 날 정도로 반복되는 이 질문의 이면에는, 그가 이런 질문을 이미 여러차례 받았으며 때문에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물어보는 사람의 호기심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일방적인 호기심을 때로는 관심과 호의라고 착각한다. 그 착각에 모리는 그저 웃어 넘겨 버리지만, 영화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는 정은채는 비슷한 상황에 버럭 화를 냄으로써 화답한다. 뜬금없는 오지랖과 느닷없는 분노. 모리의 눈에 한국인들은 참 이상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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