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외로움 사이의 가교

영화 이야기 2014. 8. 23. 20:41 Posted by cinemAgora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를 오랜만에 봤다. 2009년 <탈주> 이후니까 무려 5년만이다. 그 사이에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게을러서인지 챙겨보지 못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에는 성적 소수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 신작 <야간 비행>(8월 2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등학생 얘기다. 

줄거리를 최대한 간단히 요약하면 동성애자 학생이 이성애자 학생을 짝사랑하는 얘기다. 그런데 둘 사이의 감정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걸 또 '우정'이라고도 함부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어쨌든 두 친구는 '외로움'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고, 성적 정체성을 떠난 소통의 부분 집합의 영역 속으로 조심스레 진입한다. 그건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깜깜한 밤 하늘을 날며 불빛을 반짝이는 야간 비행과도 같아 보인다. 세상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 위태롭지만, 눈물을 한바탕 쏟아 내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견고하게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어떤 주제 의식을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그의 작품에 대한 내 연구가 현저히 부족하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송희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성적 소수자의 문제를 시대의 폭력성에 좌절하는 소외된 이들과 병치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차별적 폭력이다. '상승 욕망'이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는 정글 사회에서, 그는 먹이사슬의 맨 아래 위치한 이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퀴어 영화이든 아니든, 그의 시선은 한국 사회의 공기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귀기울일만한 가치를 획득한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비겁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폭력적이다. 이송희일의 촉수에 그건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 고통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착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 부지불식간에 나쁜 놈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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