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이 시대의 잔혹한 풍경화

영화 이야기 2014. 8. 14. 12:01 Posted by cinemAgora




이번주 개봉하는 영화 <해무>는 여러 모로 <살인의 추억>과 닮은 구석이 많다. <살인의 추억>이 1980년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 삼은 연극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면, <해무>는 2001년 제 7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 삼은 연극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봉준호와 심성보가 각본에 참여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는 <해무>의 제작을 맡았고, 심성보가 연출을 담당했다.

영화 <해무>의 배경은 1990년대 말이다. 그러니까 IMF의 광풍이 몰아닥친 시점이다. 여수 앞바다를 주름 잡던 전진호는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폐선 위기에 몰리자 위험한 도박을 하기로 한다. 선장 철주(김윤석)가 선원들을 설득해 조선족의 밀항을 돕는 일에 나선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지만, 경찰 단속을 피하려다 전진호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뿌연 바다 안개 속의 전진호는 광기의 지옥으로 돌변하고 만다.

<해무>는 '전진호'라는 배로 상징화된 한국사회의 축약도와도 같다. 돈과 성에 대한 욕망이 뒤엉킨 이 곳은, 이성과 광기가 종이 한장 차와도 같은 공간이다.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다가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그 마수를 드러낸다. 전진호의 선원들은 흔히 '서민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덕들을 갖추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악마로 변하고 만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내재된 이중성의 메타포이다. 즉, 한국의 현대사가 그 백성들에게 심은 생존법이 실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영화 <해무>는 관객들로 하여금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맥락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듯, 영화가 재구성하고 있는 사건이 한국 사회의 어느 구석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는 점은, <해무>가 선사하는 남다른 통찰이다.

<명량>이 우리에게도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있었음을 확인시킨다면, <해적>은 진짜 리더를 상실한, 지금 시대의 잔혹한 풍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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