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엔 싸움 깨나 한다는 친구들은, 자기들만의 리그가 있어서 약하고 힘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저 지들끼리 누가 더 센가를 겨룰 뿐이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요즘 학교에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약한 애들 괴롭히는 것도 솔선수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니, 세상이 잔인해지는 것은 학교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윤선 감독의 독립영화 <18-우리들의 성장 누아르>(8월 14일 개봉)에도, 부모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로, "같이 놀면 안되는 친구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이 감독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90년대 말이라 그런지 정서가 내 경험과 비슷하다. 요즘 말로 일진, 그러니까 누구도 함부로 못건드리는 고교생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힘도 약하고 체구도 작고 성격도 소심한 동도(이재응)이라는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 어느날 자신을 괴롭히는 반장을 혼쭐낸 같은 반 싸움짱 현승(차엽)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들의 리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집단화된 어떤 그룹이나 마찬가지로, 그들 내에서도 알력이 생겨나고, 또 다른 싸움짱 동철(이익준)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동도가 짝사랑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불거진다. 그리고 이것은 수컷들의 암투로 비화된다. 모든 것을 다 나눌 수 있으리라 믿었던 친구들의 사이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다. 

영화 <18-우리들의 성장 누아르>는 제목 그대로 성장 영화이자 누아르다. 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은 그러나, 영화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그 시절의 청춘들이 그렇듯 좌충우돌하고 뒹구는 과정에서 그들은 성장하고, 그 성장의 과정은 터널처럼 어둡다. 그러나 모든 터널이 그렇듯, 거기에도 끝이 있다.

고등학교 때 서울필름스쿨에 들어갈 정도로 영화광이었던 한윤선 감독은 여자 이름이지만 남자 감독이고, 실제로 체구도 작아서 영화 속의 동도에게 자신의 학창 시절을 많이 투영했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을 우정 드라마로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폭력 외의 표현 수단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면을 들춰 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이다. 청소년들이 갖는 폭력에 대한 동경은 강제된 결핍이 그 전제라는 것을, 이 영화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같이 놀면 나쁘지 않은 친구들이라는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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