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속의 공권력의 모습은 주로 '경찰' 캐릭터로 상징화돼 왔다. 원조격은 강우석의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 시리즈다. 비록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 시리즈를 모방한 것이 비교적 분명해 보이지만, 두 시리즈는 살짝 부패했을지언정, 혹은 깡패보다 더 깡패 같지만 그래도 정의를 수호하는 캐릭터로 경찰을 묘사한다. 

<살인의 추억> 속의 경찰은 무기력의 상징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위 진압에는 적극 동원되어도 개인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채 유력한 용의자를 놔주며 "밥은 먹고 지내냐"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즉, 이 영화 속에서 봉준호가 묘파하는 공권력은 결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관객들의 공유된 기억과 현재성을 담보하고 있었기에 흥행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나홍진의 <추격자> 같은 작품에 이르면 아예 경찰의 존재감은 사실상 거세된다. 자신에게 속한 매춘부를 살해한 살인범을 포주가 쫓는 구도다. 그러니까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추격하는 형국이다. 법의 집행자는 주변을 배회할 뿐, 오로지 사적 복수의 피비린내만이 진동한다. 

류승완의 <부당거래>는 더 나아가 경찰과 검찰을 먹이사슬 구도의 정글 게임 속으로 집어 넣는다. 비리 경찰과 비리 검찰이 서로의 약점을 활용하며 힘을 겨룬다. 공권력을 대표하는 두 상징화된 인물 사이에 펼쳐지는 "누가 살아 남느냐"의 게임 속에서 법과 정의는 실종된다. 

'정의의 수호자-->무기력한 공권력의 상징-->아귀 다툼의 당사자'로 전이돼온 한국영화 속 경찰은 최근 들어서는 바야흐로 '악당의 위치'로 격상(?)된다. 

비록 리메이크이긴 했지만 지난 달 개봉한 <표적>은 영문도 모른 채 쫓기게 된 한 남자가 거대한 비리 경찰의 카르텔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역설적이다. 민중의 지팡이여야 할 경찰이 민중의 적이 된 것이다. 

5월 29일 개봉 예정인 <끝까지 간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이선균은 업체들로부터 상납을 받아온 비리 경찰이다. 게다가 그는 얼떨결에 사람을 치어 죽이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상중인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집어 넣는다. 그런데 감쪽 같이 모두를 속인 줄로만 알았던 이 사실을, 단 한사람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정체 모를 이에게서 모종의 협박을 받는 신세가 된다. 

한국영화 속에서 경찰이 이처럼 버젓이 악당의 위치로 자리매김한 데는 분명 맥락이 있을 것이다. 영화는 현실의 볼록거울이고, 언제나 당대 대중의 집단 무의식과 조우한다. 그렇다면, 이들 영화들을 공권력이 실종된 시대의 캐리커처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 그런 상황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공권력에게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까지 기대하지도 않는다. 제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지는 말아달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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