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떤 행동으로 말미암아 누군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내 잘못일까?" 다음주 개봉하는 영국 영화 <진저 & 로사>가 내게 안겨준 화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위협이 도사리던 때, 하필 히로시마 원폭이 터진 1945년 같은날 태어난 열여섯 동갑내기 단짝 진저와 로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반핵 시위에 참가하며, 자신들의 숭고한 가치를 외친다.
가치를 공유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로사가 진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모종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소울메이트와도 같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생긴다. 로사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 입은 가슴과 두려움을 핵전쟁의 공포라는 더 큰 포장으로 덮으려 한다.
로사의 눈에 어른들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엄마와 사이가 틀어진 아빠는 자유주의자다. 그 어떤 규율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이다. 로사는 엄마보다 그런 아빠가 더 멋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아빠의 자유주의적 태도는 엄마와 자신을 힘들게 한다. 상처를 입힌다.
흔히들 "삶의 부조리"라고 일컫는 것은, 비단 인간의 유한성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 안에서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다. 영화 <진저 & 로사>는 성장 영화의 틀 속에서 바로 그런 부조리한 삶의 단면에 홍역을 앓는 한 10대 소녀의 신경증적 방황기를 담아낸다.
진저 역을 맡은 엘르 패닝은 잘 알려진 아역 배우 출신 다코타 패닝의 친동생이다. 영화 속의 진저는 열 여섯으로 설정돼 있지만, 촬영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 세살이었다. 언니만큼 연기력이 천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