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크게 직배 영화와 수입 배급 영화로 나뉜다. 직배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직접 한국에 배급하는 것이고, 수입배급 영화는 한국의 수입사를 통해 배급하는 것이다. 워너와 폭스, 소니, 디즈니, 유니버설 등의 영화는 한국 내 지사를 통해 국내에 직접 배급한다. 이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른바 "텐트폴(Tent Pole, 텐트의 가운데 기둥처럼 우뚝 솟았다는 뜻으로 메이저 배급사의 주력 영화를 일컫는 말) 영화"라고 불리우는 대형 블록버스터를 주로 내세워 한국 시장을 공력한다. 단, 메이저 가운데 파라마운트 영화는 CJ가 국내 배급권을 독점하고 있다.
분명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영화인데, 배급사가 직배사가 아닌 경우도 있다. 메이저 직배사 소속 작품이 아닌 경우다. 미국에는 라이언스 게이트나 서밋 엔터테인먼트 등의 이른바 "미니 메이저" 배급사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메이저들처럼 대규모 제작 자본을 투입하는 텐트폴 영화보다는, 주로 중급 예산의 영화들을 배급하는데, 일반 블록버스터의 3분 1 규모인 3천 700만 달러 예산으로 제작돼 전세계적인 빅 히트를 기록한 서밋 엔터테인먼트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주 개봉하는 조니 뎁 주연의 <트렌센던스>는 롯데가 배급한다. 그 얘기는 이 영화가 메이저 직배사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미니 메이저가 필름 마켓에 내놓은 걸 조이앤컨텐츠그룹이 수입했고, 롯데가 배급 대행을 맡은 경우다. 이 영화의 북미 배급은 워너가 담당하지만, 세계 배급은 서밋 엔터테인먼트가 담당한다. 따라서 직배가 아닌 수입 형식으로 개봉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니 메이저 영화의 경우엔 앞서 말한대로,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트랜센던스>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의 작품 <인셉션>이 1억 6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쓴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1억 달러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예산이 줄어들면 컴퓨터 그래픽 시각 효과에 들어가는 제작비도 줄어든다. 그 대신, 참신하거나 독창적인 이야기로 승부를 거는 경향성이 커진다.
만약 <인셉션>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이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이라는 홍보 문구에 현혹돼 동급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번짓수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반감이 대립하는 기둥 풀롯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신뢰"라는 제법 의미 심장한 화두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여러 차례 나온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영화 속의 윌 캐스터(조니 뎁)는 바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안에 있는 천재 과학자이고, 때문에 인간들은 그를 세상을 파멸시킬 위험한 존재로 적대시한다. 영화의 속도감은 기대만큼 빠르지 않고, 스펙터클은 그다지 스펙터클하지 않지만, 조니 뎁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딜레마와 갈등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불신의 그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보인다.
물론 대단한 걸작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 영화의 번짓수를 사전에 알고 본다면, 꽤 즐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