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청계 광장 집회에 나갔더니 행사장에 YTN 카메라 기자가 나와 있었나 봅니다. 행진 대열 속에서 큰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YTN 개새끼들 꺼져." 조금 있다가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KBS 새끼들 꺼져!" 아마도 시위 참가자들에게 두 방송국은 이번 세월호 참사 관련해 공정하지 못한 보도를 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나 봅니다.


오늘날 많은 언론들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론은 시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실상의 유일한 창으로서의 위력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 숱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언론의 권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MB 정부 시절 언론 장악의 차원에서 경영난에 봉착한 보수 신문들에게 떡처럼 던져주었던 종편 탄생의 맥락은 까맣게 잊어 버린 채, jTBC가 진보언론처럼 둔갑하는 코미디도 벌어집니다. 몇 안되는 선택지 가운데, 사람들은 그것이 비록 공정성 제스처일지언정 애타게 칭송할 정도로, 지금 한국 언론의 지형도는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5월 15일 개봉하는 태준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슬기로운 해법>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이 시의적절하고도 용감무쌍한 작품은 사회의 공기로서의 언론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 기득권의 이익을 비호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세금 폭탄'이라는 단어를 창안해 전국민의 3%에만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가 마치 온 국민에게 엄청난 세금 부담을 안길 것처럼 부풀린 사례(그 보도를 연일 내뱉던 조중동 세 신문에 당시 부동산 전면 광고가 쇄도했던 사실도 다큐는 회고합니다. 세 신문의 논조에 대한 광고를 빙자한 사실상의 응원인 셈이었죠.), 검찰이 흘린 혐의 사실을 기정 사실인양 보도해 신정아, 노무현에 대한 여론 재판을 부추긴 사례 등, 언론이 자신들이 싫어하는 이들에게 관행처럼 가하는 폭력적 틀짓기(Framing)의 방식을 짚어갑니다.


이런 와중에 MB 정권의 공중파 장악과 종편 전략의 맥락도 파헤칩니다. <슬기로운 해법>은 종편을, 공중파의 영향력을 분산시키면서 동시에 언론 지형을 우편향화하기 위한 MB의 방송 장악 전략의 일환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뒤늦게 드러난 4대강 등의 숱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관을 동원한 정권 연장이라는 결과적인 성공으로 이어졌지요.


다큐멘터리는 산업으로서의 한국 주류 언론이 최대 광고주인 삼성과 어떤 밀월 관계에 놓여 있는지도 고발합니다.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삼성이 한겨레와 경향에게만 광고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위주로 신문을 짜깁기한 스크랩을 매일 꼼꼼히 읽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삼성 언론상 시상식장에서 대기업으로부터 상을 받으며 우아한 대화를 나누는 언론인들의 우아한 풍경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의 자리조차 봉쇄당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의 풍경을 교차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이 나라의 언론 표현의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둔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양치기 소년의 전성 시대다. 한 때 위기에 처했던 양치기 소년은 돌파구를 찾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거짓말을 믿고 있다."는 내레이션이 더 없이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큐멘터리 <슬기로운 해법>은 야만의 언론이 판치는 시대를 종결하기 위한 슬기로운 해법은 과연 무엇인지 묻습니다. 탄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고민을 좀더 구체화해 보는 것도, 해법에 다가서는 한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언론을 일컬어 "Watch Dog"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파수견이라는 뜻이지요.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는 게 파수견의 역할이지만, 한국 언론이라는 파수견의 시선은 반대를 향해 있는 것 같습니다. 거꾸로 권력을 대신해 시민을 향해 짖어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죠.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YTN 해직 기자 조승호는 말합니다. "권력은 언론이 감시하지만 언론은 시민들이 감시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언론의 파수견을 자처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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