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개봉하는 <위크엔드 인 파리>라는 작품을 보며,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가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이를테면 은퇴를 앞둔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면, 아마 저런 모습으로 여전히 서로 티격태격대며 파리 곳곳을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을 <비포 던 Before Dawn> 정도로 지으면 어떨까도 싶어졌습니다.
결혼 30년차 영국인 부부 닉(짐 브로드벤트)와 멕(린제이 던칸)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결혼 기념 여행으로 파리에 오지만, 닉이 잡은 호텔에서부터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닉이 딴에는 옛 추억을 되새기겠다며 허름한 호텔을 잡은 것부터 멕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멕은 다짜고짜 택시를 잡아타고 파리 시내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로 달려가서 토니 블레어가 묵었다는 스위트룸을 잡아 버립니다.
로맨틱한 여행을 꿈꾼 이들 부부의 여정은, 30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켜켜이 쌓인 모순이 질적 전환을 일으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닉은 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다고 믿고 싶어하고, 멕은 애정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난데 없는 이혼 얘기까지 오가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래된 남녀 관계가 어떻게 변질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서 같아 보입니다. 멕은 영화 속 파티장에서 낯선 남자의 질문을 받습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멕은 답합니다.
"이 나이에 생각할만한 것들. 권태, 불안, 분노 같은 것들이요."
그랬더니 남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행이군요. 그런 불행들에 익숙해지실 때가 됐잖아요."
익숙해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권태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안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닉과 멕은 그 불행들에 익숙해지며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노년의 애정 행각을 보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도 유효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권태기, 또는 완숙기를 목격하는 것은, 지금 막 사랑에 빠졌거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랑이라는 미명의 고통에 기만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노팅힐>을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