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된 지성

별별 이야기 2013. 6. 30. 16:32 Posted by cinemAgora

나는 완전한 맑시스트는 아니지만, 칼 맑스의 이 테제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지극히 정치적 명분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논평을 포기한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를 보며, 한 때 학생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이 두 학교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냥 가슴을 두드리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까놓고 얘기해서, 이미 완전히 서열화된 대학은 공부 잘하는 노동자 농민들의 자식들에게 신분 상승의 통로로 기능했던, 70-80년대의 그 대학이 아니다. 소위 명문대라는 곳은 이미 부모가 획득한 기득의 신분을 유지 전수하기 위한 통로가 됐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이들이 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된 결과다. 이들의 출신 성분에 대한 데이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명문대에 입학하는 친구들의 많은 비중이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다.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그렇기에, 반값 등록금 문제도 피부로 와닿는 이슈가 아니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그들은 이 사회의 잠재적 '갑'인 것이며, 그들의(정확하게 말해 그들 부모들의) 사회적 존재에 의해 그들의 사회적 의식도 규정돼 버렸다. 

문제는, 실제로는, 그러니까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얻게 되는 지위는 결코 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역시 "엘리트 출신"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둘러싸인 노동자들이 될 처지다. 블루 칼러가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 

또 하나의 문제는, 그런 현실 인식을 하기에 이들의 사회 과학적, 인문적 공부의 질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계급적 한계와 공부의 한계가 맞물리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말 잘듣는 갑의 논리에 순응하는 자들이 됐다. 잠재적 노예들이 된 것이다.

하여, 지성의 상아탑은 그렇게 일찌감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승리의 결과물이자 상징물, 그것이 지금의 풀을 먹는 호랑이가 된 고려대학교와 발톱 빠진 독수리가 된 연세대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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