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늘 나라로 가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오늘날 충무로에 이 말을 대입하면 이렇게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꿈꾸는 이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건, 교회가 회개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영화 감독이 되고자 하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병헌. 배우가 아니다. 영화 연출부에서 굴러 먹다가, 화장실이 급해 촬영 현장을 잠깐 비운 걸 두고 욕하는 데 발끈해 "똥 마려운 것도 죄냐"고 버럭 화내며 백수 생활로 접어든 친구다. <힘내세요, 병헌씨>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이름이다.
병헌은 하루에 8시간 이상 놀고, 1시간 시나리오 쓸까 말까 하는 인물이다. 늘 어울려 다니는, 그만큼이나 한심한 영화과 동기들과 허구한날 술 마시는 게 일과다. 그러고도 자기는 한 틈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고 우긴다. 딴엔 맞는 말이다. 예술가에겐 똥 싸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이다.
이런 친구에게 어느날 기회가 찾아왔다. 2주만에 뚝딱 쓴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로 제작사와의 계약을 따낸 것이다. 아내 임신 중에 바람 피운 죄로 이혼까지 당한 이 남자, 지금이야말로 옥탑방 신세를 면하고 팔자 좀 피려나 하지만, 이게 고난의 시작이라는 것을, 충무로에서 좀 굴러 먹어본 이들은 다 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사건건 트집 잡는 프로듀서와, 배우 매니지먼트사들의 높은 콧대와, 끝없이 이어지는 각색의 가시밭길. 게다가 투자는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는, 일찍이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2009)가 아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 영화 속에서 늦깎이 감독을 꿈꾸는 중학생 엄마는, 실체도 모호한 상업성과 대중성의 잣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제작 환경에 결국 좌절하고 만다.
<힘내세요, 병헌씨> 역시 신인 감독으로 데뷔하는 과정의 좌충우돌을 담았고, 그 과정은 신수원 감독이 겪은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다만, 이 영화의 호흡은 훨씬 경쾌하다. 사실상 코미디로 분류해야 맞을 정도로, 감독 지망생 병헌과 각각 피디와 촬영기사, 배우 지망생인 그의 백수 친구들이 펼치는 "찌질함의 향연"은, 시쳇말로 웃프다. 그러니까 슬퍼서 웃기고, 웃다가 슬프다.
또 하나, 이 영화는 방송국 휴먼 다큐멘터리의 틀을 차용하고 있다. 마치 인간 극장처럼, 여성 내레이터가 병헌 씨의 족적을 좇지만, 감동보다는 냉소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다. 그러니까 영화가 채택한 액자는 병헌씨의 헛된 꿈을 냉소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 그 자체는 충무로판의 천편일률적이고도 상투적인 룰을 냉소한다. "왜 모든 게 맥락이 있어야 하고,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거지?" 좌절의 언저리에서 병헌은 비웃는다.
이 땅에서 영화 감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영화 감독이 꿈이라는 말보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다행히, 정말 다행이게도, 병헌 씨는 결국 영화를 만들었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그가 감독이라는 직업보다 영화를 꿈꿔 이뤄낸 아주 훌륭한 결과물이다. 진짜 예술은,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사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통과해온 깊은 좌절의 계곡에서 길어 올리는 것임을, 이 영화는 입증한다. 6월 27일 개봉.
